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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의 날들

-비는 세상을 단절시키는 것 같지만 역으로 비온 뒤의 세상은 단절을 뛰어넘는다. 초등학교 옥상 위 새소리가 집 앞까지 와 닿고 늘 감춰져있던 하늘이 파란 속내를 드러낸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바라 본 하늘을 향해 웃어보였다.
-다시 비가 오지만 예전만큼 아프지는 않다. 다만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빗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세상과 이어져 있기를 바란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녀석이니까. 균형 감각이 없어서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넘어지니까. 혼자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니까.

  어느 틈에 주말이고 겨울이 코 앞이다. 2학기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날짜 관념에 둔해지는 건 자꾸 멍해지는 스스로가 보기 싫어 일을 만들어서까지 하다 보니 할 일의 홍수에 밀려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맥을 통해 영어 번역 아르바이트도 구했고 공모전 준비에도 들어갔다. 프로젝트와 과제 등 가뜩이나 학교 공부로 정신이 없는 통에 터진 일복이라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적어도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잠잘 시간도 부족해서 예전처럼 새벽까지 불면증에 뒤척일 일도 없고 당연히 멍해져 있을 틈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으레 바쁘다는 게 좋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젊을 때는 바쁜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삶을 향해 전력투구를 하는 것의 이점과 함께 부럽다는 반응을 덧붙이면서. 확실히 청춘을 활기차게 보내는 것이 남는 것도 많을 거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바쁜 날들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채우는 것 없이 자꾸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이다. 마치 ctrl+c, v로 덧붙이는 일만 반복하는 느낌. 닥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은 가지게 되었지만 어떤 일도 새롭지 않고 슬슬 지겨워진다.
 
물론 삶은 하나도 지겹지 않다. 지겨울 리가 없다. 매일같이 보는 하늘도 하루하루 다른 모습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는 공기도 늘 다르니까. 그걸 모르는 감각 없는 사람들이나 삶이 지겹다고 하소연해대는 것일 게다. 다만 지겨운 건 나다. 세상은 눈 깜빡할 사이에도 미친 듯한 속도로 변해 가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당사자인 나는 변하는 걸 전혀 느낄 수 없다. 나도 이 세상에 속해 있으니 그 속도에 맞춰 같이 변하는 게 맞고 분명 변하고 있을 텐데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너무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20년을 넘게 살았는데 아직 내가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애초에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쓰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형, 주말인데 뭐해? 술 한 잔 하자-]
 
과 후배 녀석이다. 어제까지 마감이던 전공과목의 2차 프로젝트 제출을 끝내고 쓰러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 살아났는지 또 술타령이다.
 
[리포트 쓰는 중인데 왜? 이벤트라도 있냐?]
 
[프로젝트 끝난 기념으로 애들끼리 모였어. 맥주 한 잔 하자-]
 
[귀찮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어딘데?]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학교 앞 술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잠시 의미 없는 우선순위로 고민해보지만 역시 사람이 우선이다. 작성 중이던 리포트를 저장하고 컴퓨터를 끈 다음 나갈 준비를 한다. 겨울의 문턱이라 저녁에는 꽤 쌀쌀하니 두툼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입고 있는 트레이닝보다는 뭔가를 더 입어야 한다. 대충 잠바를 걸치고 나가려다가 주말이니 나름 기분이라도 내볼까 싶어 옷장을 뒤적이는데 낯익은 옷 하나가 보인다. 그 사람과 커플로 샀던 긴팔 셔츠다. 작년 이맘때 쯤 쇼핑 겸 데이트로 아웃렛에 놀러갔을 때 파격 세일 피켓이 걸려있는 곳에서 똑같은 옷을 샀었다. 기본으로 입을 수 있을 만큼 무난한 옷으로 둘만의 특별함은 떨어졌지만 그 사람과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작 커플티로써의 구실은 하지 못했다. 딱 한 번 같은 옷을 입고 만난 이후로 그녀가 부끄러워해서 이 옷을 입을 때는 서로 미리 공지해 같이 입는 일을 피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녀 없이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다. 아웃렛에 갔던 일을 시작으로 작년에 함께 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크리스마스도 함께 했고 한 해의 마지막 날도 그녀와 함께 했었다. 올해는 하나씩 혼자서 이겨나가야 한다. 더 많이 강해져야한다고 다짐하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을 알릴 뿐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손에 잡히는 대로 다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지만 이 정도는 견딜 만하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니까.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겨울의 추위 정도는 쉽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늘 그래왔듯이 이번 겨울도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혼자라도.
 
약속한 술집에 도착해보니 5명이 모여 3000cc 맥주를 거덜 내고 있었다. 하긴 기계가 아닌 이상 며칠 밤을 새는 강행군을 펼쳤으면 휴식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이렇게 모여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집에 돌아가 간만의 단잠을 이루고 나면 내일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후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나눈다.
 
"형, 소개팅 안 할래요?"
 
갑자기 후배 한 명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응?"
 
"친구 누나가 교대 다니는데 키 큰 사람 없나고 물어봐서요."
 
"아…글쎄."
 
"형 여자친구랑 헤어진지도 오래됐잖아요."
 
"4월 달에 헤어졌으니까…7개월 정도 되었네."
 
정확히는 7달 하고도 3일째다. 이걸 떠올리고 있는 나도 참 징한 놈이다. 그리고 하나 더 떠오르는 게 있다. 그 사람과 함께 봤던 뮤지컬의 내용이다. 전부는 아니고 단편적인 기억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헤어진 후에 그것이 정리되기 까지 걸리는 기간은 사귄 기간의 반 만큼이라는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2년을 만나고 헤어진 우리의 관계가 정리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5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정말 5개월만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문득 19세미만 관람불가에 대한 논란이 생각난다. 18년 364일을 산 사람은 안 되는 것이 하루가 지나 19세가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하루 사이 크게 바뀐 것도 없을 텐데 단지 시간을 정해 그렇게 막아놓은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법에 따라 19세가 넘으면서 규제가 풀렸고 더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술도 담배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일까. 어느 날 갑자기 괜찮아져서 너를 잊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그 정도면 시간도 제법 지났네요. 그러지 말고 소개팅 해요."
 
넉살 좋은 후배 녀석이 위로 겸 핀잔을 던지고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건배를 제의한다. 속 편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며 건배를 하고 맥주를 들이킨다.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속 편한 쪽이 더 좋다. 좋다기 보단 적합하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능력 밖의 일들은 쉽게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이번만큼은 마음이 삶의 패턴에 맞추지 못한 것 같다. 결국은 내 잘못이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제법 웃을 수도 있다. 새삼 시간의 힘이 대단함을 느낀다. 분위기에 어우러져 맥주를 다시 들이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이럴 땐 술기운도 나쁘지 않다.
 
간만에 밤새 달리자는 후배들을 다독여 적당히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분위기와 술기운의 조화 탓인지 기분이 좋아서 오랜만에 메신저에 접속해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안부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의 방향이 다시 나의 이별로 향한다.
 
[잘 정리하고 있어?]
 
[정리야 그럭저럭. 시간이 약이지 뭐]
 
[그렇군. 역시 시간이 약인가…]
  [그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돼?]
  [다 내 잘못이지 뭐]
 
[응? 헤어진 게 어떻게 다 네 잘못이야?]
 
[분명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야. 하지만 내 잘못이 없었는데 환경만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거라면 다음번에 비슷한 일이 벌어져도 나는 또 손 놓고 세상만 탓해야 하잖아. 또 그러고 싶진 않아. 나도 발전이 있어야지.]
 
이렇게 대답하고 나니 친구의 말이 끊어진다. 할 말이 없는 것이겠지. 억지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더불어 술기운도 끊긴다.
 
문득 소개팅을 해주겠다던 후배의 제안이 생각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마음에 공간이 필요하다. 아직 마음 속 가득 찬 그 사람을 지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난 김에 노력의 일환으로 미니홈피에 들어가 비공개로 해둔 그녀의 사진 폴더를 지운다. 삭제를 클릭하니 다시 한 번 지울 것인가를 묻는다. 실수로 인한 삭제를 방지하는 것인 줄은 알지만 어쩐지 잔인하다. 이별의 순간을 곱씹는 기분이다. 차마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손의 감각만으로 클릭을 한다. 기억의 처리도 이렇게 한순간에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내친김에 그녀가 남긴 방명록의 글과 댓글들을 지우려고 하다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양에 포기해버렸다. 그동안 그 사람이 이렇게 깊이 들어와 있었구나. 이것도 내 삶의 일부분이었으니 그냥 안고 가는 게 어떠냐며 머리가 타협을 시도해온다. 오늘은 이정도로 되었다고 협상을 마무리 짓고 캔디맨의 '하루'를 흥얼거린다. 갑자기 생각난 노래가 지금 상황에 너무 적절한 것 같아서 오히려 맥이 빠진다. 후렴구만 부르다가 단념해버린다.
 
컴퓨터에서 떨어져 TV를 켠다. 뉴스에서는 애인과 결별한 후 자살한 남자의 소식을 알려준다.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세상이 끝난 것과 맞먹는 느낌이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렇게까지 치열하지 못하다. 모든 걸 바칠 듯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온전히 던질 수는 없다. 사랑이 끝나도 삶은 이어지니까.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삶이라도 다시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잘은 모르지만 삶이란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더 빛나는 것일 거라고 제멋대로 결론 내린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어느새 다음 프로로 넘어간 TV에는 연예인들이 나와 낄낄거리며 무언가를 배우는 중이다. 평소 목소리보다 몇 옥타브는 높을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소리줄임'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신나 보이는 화면과 함께 뭔가를 만드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어려운지 잘 되지 않는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삶이 잘 살아지지 않는다."
 
텅 빈 방안에 혼잣말이 가득 차 메아리가 되어 들려온다. 순간 눈에 눈물이 핑하고 고인다. 우리는 어째서 이 시대에 태어나서 이렇게나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충 눈물을 닦아내고 휴대폰을 열어 손을 움직인다.

  [생각해줘서 고맙고 이런 모습이 병신 같은 건 아는데 아직은 나 다른 사람 못 만나겠다. 미안]

  아직은 너를 잊지 못했다. 솔직히 앞으로도 그럴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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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머리무군

 

△쌀집 아저씨로 알려진 김영희 PD의 또 다른 연출작 <나는 가수다>
감동이 목표라는 그의 인터뷰대로 그는 이번에도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나는 ○○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대표적인 반응은 두 가지로 그것이 무시할만한 것일 때에는 "근데 뭐 어쩌라고?"라는 것이거나, 어느 정도 존재감을 인정할 정도일 때는 "그건 알겠고 그래서 뭘 어떡할 건데?(뭘 보여줄 건데?)"정도일 것이다.
최근에 MBC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들의 일밤'에서 이런 당당한 선언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타이틀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나는 가수다>
고백하건데 타이틀만 들었을 때의 내 반응은 전자의 것이었지만 예고편을 통해 이소라, 박정현, 김범수 등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후자의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가수가 아닌 퍼포먼스 위주의 엔터테이너들이 가요 프로를 장악한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도덕 시험 정답 같은 생각을 하며 기획 의도에 대해 약간의 궁금증을 가질 만큼 호의적이 되기까지 했다. 


△ <나는 가수다> 1기라면 1기라고 할 수 있는 첫 출연 가수들.
김건모,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윤도현, 이소라, 정엽 등 면면이 화려하다.


관심 속에 뚜껑이 열린 <나는 가수다>의 지금까지의 반응을 살펴보면 애초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굳이 범람하고 있는 서바이벌 시스템을 선택했어야 하냐는 질책부터 그래도 실력 있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들까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바이벌을 강조한 것은 지나친 부담감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경쟁이라는 것에 자극을 받아 더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것과 탈락한 자리를 채울 다른 가수들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서바이벌 형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을 듣자마자 "또 서바이벌이야?"라는 반응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1회 때 제작 의도에서도 밝혔듯이 감동 외에 주말 예능으로써의 경쟁력이 필요했고 누군가가 "좋은 가수들을 데려다 노래만 들려주는 것은 예능이 아니잖아?" 라고 반문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서바이벌'이 붙여진 <나는 가수다>는 보는 내내 마음 한 편을 불편하게 만든다. 일테면 박정현까지 갈 것도 없이 정엽의 손동작이 거슬리고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이소라에게 금방이라도 심사위원석의 누군가가 독설을 퍼부을 것 같은 기분을 느껴지게 했다.(같은 방송사의 다른 프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귓 속을 맴도는 한 마디 "그래서 제 점수는요."

얼마 전에는 노래 중간에 인터뷰 등을 넣은 것이 음원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김영희 PD의 발언까지 논란이 되었다. 그런 이유의 편집이었다면 앞으로 모든 음악 프로그램에 중간 중간 인터뷰를 넣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비판이 거셌던 것은 그만큼 좋은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헤드셋을 끼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으며 울컥해하다가 감정이 끊겨 멍하니 있었던 나 역시 그랬으니까.)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그 때, 좋아하는 노래가 중간에 끊기거나 노래가 시작했는데도 DJ의 멘트가 끝나지 않으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1절까지는 노래를 끊지 않겠다는 뒤늦은 판단이 자충수가 될지 어떨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제작진이 감동과 재미 사이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은 확실하다.

오히려 그나마 논란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청중평가단이라는 평가 방식인데 공정하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날씨와 경험과 같은 환경에 따라 와 닿는 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살면서 겪어오지 않았던가.) 향후 평가 방식이 바뀔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한도전>의 '미남이시네요'의 집계 방식이 그나마 공정하지 않은가라는 판단이 든다. 뭐 굳이 논란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어쩌다보니 계속해서 '논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논란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방송에 나온 가수들의 이름이 검색되어 관련 노래들을 다시 찾아보고 그 감동에 다시 빠질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1회 이후로는 무작위로 선정된 다른 노래를 편곡을 통해 가수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라는 점 역시 기대된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그들이 부른 음원도 관심을 받을 것이고 이전의 비슷한 프로그램들의 선례처럼 차트 상위권을 차지할 수도 있다.(글을 쓰기 시작한 지 며칠만에 음원 공개 소식이 떴고 한동안 지금 활동 중인 가수들이 묻힐 거라는 논쟁도 가중되고 있다.) 방송이라는 것이 가진 파워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 점에 있어서 <나는 가수다>는 충분히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 논란도 많지만 관심도 많다. 감동을 전하기 위해 음원 공개를 생각했다면
현장 DVD까지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건 개인적인 바람.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해 특별히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고민해봤지만 어떤 입장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무언가가 이슈가 된다면 그것을 통해 그 시대를 살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한동안 <슈퍼스타 K>가 인기를 끌면서 서바이벌 시대의 난립을 이끌었고 그것은 대중의 관심이 만들어진 스타에서 스타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의 <나는 가수다> 또한 이 시대의 가요계에 일침을 놓을 만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동안의 행보로 보았을 때 김영희 PD의 의도는 시청자들이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음악이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어 행복했구나. 그리고 여전히 행복하구나.]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이 종방하는 그 날까지 <나는 가수다>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 한동안은 이슈 메이커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보이지만.


*
미처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나갔다 돌아왔더니 드디어 첫 탈락자가 발표되었다. 때가 되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뉴스 제목을 봤더니 '첫 탈락자 김건모, 논란의 재도전'이다.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은 본인은 물론 제작진에게도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어쩌다 이런 글을 쓰고 있던 나 역시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들었다. 뭐지 이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나 어쩌나...그냥 맘 편히 이번주 다시보기나 보고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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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머리무군